백제百濟

금동 미륵반가사유상, 국보 83호! 겨우 60여 년 살아온 60세의 나와는 어려운 관계 속의 만남이었다. 결국 긴 세월의 중첩에서 오는 강한 아우라와 기에 눌린 나는 첫날 촬영에서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2번째 촬영 허가가 나기까지 국립중앙박물관을 수없이 드나들었다. 유리관속의 반가사유상 앞에서 나는 사진가의 모습이라기보다는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기도자의 초조한 모습이 되고 말았다. ”부처님” “부처님” “부디 당신의 본모습을 보여 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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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그 사람속의 나라는 관계성이 어느새 자리하고 만다. 그 사람은 나의 무엇이고, 나는 그 사람의 무엇일까? 라는 의미가 나의 인물 사진속에 배어드는 이유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어느 때는 나 다운 내가 비치지 않는 너에게 소리, 소리지르기도 했고 찬물 바가지를 끼얹는, 도를 넘는 해프닝마저도 있었다. 이 모든 행위는 그 인간에 대한 애착에서 비롯된 과한 사랑이었을 지언정 사랑은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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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50년 전, 10살 소년이 질러댔던 고함소리가 메아리 쳐 들려온다. 나의 소년기, 놀이터였던 수원성이 옛집 우물 수면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앞마당과도 같은 멜랑콜리한 곳이다. 그때의 소년이 50년 후 고향에 돌아와 연무대에 섰다. 그리고 50년 세월 묻은 메아리와 그때 소년의 뇌리에 남았던 이미지가 지금의 수원성과 오버랩된다. 시간의 무게와 두께를 머리에 인 수원성을 노년의 사진가는 정성껏 하나씩 둘씩, 담아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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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들숨과 날숨사이에 서 있는, 나라는 존재에 대한 경외심이 들기 시작했다. 살아 숨쉬고 존재한다는 자체가 신비롭기만 하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순탄치만은 않았을 시련과 환희의 inhalation, exhalation! 숭고한 아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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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

2005년 제주도 남단 또 하나의 작은 섬, 우도에서 만난 8분의 해녀 모습은 다름 아닌 인간사 희, 로, 애, 락을 초월한 부처님의 모습이었다. 그들의 모습은 지워질 줄 모르고 오래동안 내 뇌리에 잔상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해녀들의 평균나이는 이미 75세를 넘어 있었다. 그리고 그녀들과 365일 동고동락에 들어갔다. 2015년 파리 주재, UNESCO 미술관에서의 ‘해녀사진전’은 해녀를 2016년 UNESCO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키는 데 공로를 했다. 큰일은 억지로는 안 된다. 하늘이 도와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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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놀로그

그냥 나 혼자만의 숫자이고 중얼거림이다. 아직도 나에게 과거,현재,미래가 있는것 같아 참 좋다.
1952, 1976, 1982, 1989, 2006, 2009, 2015, 2020,
그리고. . .지금 나는 또 무엇을 향해가고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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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광고는, 이제 나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영원한 동반자라 하겠다. 촬영 의뢰가 안 들어 오면 불안해서 잠을 못 이루었고 고난도의 촬영이 들어오면 해결사라는 이름값을 하기 위해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완성 시켜야하는 스트레스로 잠을 설치는 과정. 그 안에서 광고는 나에게 지독한 불면증마저 안겨주었다. 동시에 애증관계의 사랑이 되었다. 때로는 의뢰한 촬영을 취소 하겠다는 전화가 왔으면. . .하고 은근히 전화를 기다리기도 했다.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광고사진은 네가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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